화요일, 1월 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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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생명을 택하는 길

얼마 전 영화 ‘판도라’를 봤습니다. 영화를 함께 본 교우들의 눈이 붉어졌고 착잡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영화는 예고된 것처럼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현실과 거리가 먼 가상의 내용이 아니라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에 비해 원자력발전소가 많습니다. 원전을 현대과학의 총아라고 부르지만 만에 하나 사고가 난다면 치명적입니다. 시설만 갖추면 쉽고 저렴하게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지만 그러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국민과 국가의 운명을 걸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마지막 강물이 더럽혀진 뒤에야/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비로소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북미 원주민 크리족 추장 시애틀)

편리하고 싸고 쉽게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심은 화를 불러옵니다.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더디고 부족해도 생명의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요한 것조차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연말연시로 분주하고 어수선한 이때, 교회는 생명을 택하고 생명을 나눠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이것’(창 3:6)이라도 생명이 아닌 것은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