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월 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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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정영관 유흥가 뒷골목 있던 교회 옮겨 다목적 빌딩 신축


만 4년간의 봉일천교회 목회를 마치고 1969년 3월에 서울 종로 한복판에 있는 중앙감리교회 부목사로 부임했다. 종로거리는 한밤중에도 네온사인 때문에 대낮처럼 밝았다. 교회에 들어오는 골목길에는 술집 여관 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이 즐비했다. 신학대를 졸업한 뒤 줄곧 시골목회만 한 나에게 종로거리는 별천지였다. 나는 1969년 3월 16일(주일)에 ‘적신호 앞에 있는 한국교회’라는 제목으로 부임설교를 했다. 평소 80여명이 나왔었는데 부목사가 온다는 소식에 남자 49명, 여자 65명, 총 114명이 출석했다.

그리고 1년 후 담임목사가 됐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중앙감리교회는 1890년 초대 선교사인 아펜젤러에 의해 세워진 감리교의 모(母)교회 중 하나다. 오랜 전통의 교회를 30대의 젊은 목사가 담임한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교회는 낙후될 대로 낙후돼 있었다. 뒷골목 안에 초라하게 서 있는 교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바로 새벽에 나가 예배당 구석에 있는 의자에 꿇어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우리교회는 내가 부임하기 10년 전에 교회 건축을 결정했다는데 이뤄지지 못했다. 나는 건축보다 신앙을 바로 세우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에 ‘신앙 바로 세우기 운동’을 시작했다. 몇몇 교인들과 함께 철야기도를 시작했다. 수요 저녁 예배를 마치면 항상 예배당 앞쪽 강단 앞에 둘러앉아 밤새 기도했다. 방한시설이 전혀 안 돼있어 겨울엔 찬바람을 막기 위해 벽과 바닥에 비닐과 천을 덮고 무릎을 꿇었다. 교회에 올 때 이불을 들고 오는 이들도 있었다. 매일 아침 6시에 모여 1시간30분 동안 성경공부를 하고 토스트와 삶은 계란, 커피로 아침식사를 같이 한 뒤 직장과 학교로 흩어졌다.

건축헌금을 하기 시작했다. 전교인이 매월 1만1400원씩 2년을 넣으면 3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적금에 가입했다. 이 금액을 생일에 감사헌금으로 내면 전액 건축에 쓰겠다고 광고하자 전교인이 동참했다. 한 권사님은 회갑잔치를 하려고 모은 돈을 건축헌금으로 드렸고, 어떤 교인은 결혼반지를, 어떤 이는 아이 돌 반지를 냈다. 3년이 지나자 무려 3000만원이 모였다.

교인들은 교회 건축 부지를 옮기는 게 좋겠다고 했다. 교회 주변에 술집이 많아 교인들이 드나들기가 불편했고 복잡한 골목에 들어서 있어 교회를 찾아오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전교인이 기도로 새 성전 부지를 찾던 중 인근에 880평 규모 부지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본부 사무실이 있던 2층짜리 건물을 발견했다. 우린 대지 한 편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다가 기감본부가 이사 간 뒤부터 2층짜리 건물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회 건축을 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전셋집을 옮겨 다녔다. 서울 마포구에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가 있어 건축위원들은 담임목사 명의로 사자고 했지만 나는 극구 거절해 ‘재단법인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 명의로 구입했다. 1983년 1월 9일 성전 건축공사를 마치고 눈물의 입당 감사예배를 드렸다.

서울의 도심지라는 입지조건과 급격한 도시화라는 시대적 요건에 맞춰 다목적 빌딩으로 건축했고 우리는 건물 이름을 ‘하나로빌딩’으로 지었다. 지금도 종각역에서 나오면 피맛골 뒤편으로 지하 3층 지상 12층의 하나로빌딩이 보인다. 이 이름은 ‘하나님께로, 동서남북이 하나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우리 모든 교인들의 신앙고백이자 이 건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결의의 표현이다.

정리=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